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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 여행, 하양장날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기사입력 2020-12-18 오후 7:16:1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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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 여행, 하양장날
[경산곡곡 스토리텔링]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하양공설시장 전경

 



1. 하양장에 가면

 

사는 일이 심드렁하면 시장으로 가보라는 말이 있다. 장꾼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 온갖 물품과 먹거리, 사람이 모이는 곳이 장터가 아니던가. 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삶의 에너지가 솟아난다. 본래 생이란 저잣거리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곳이 장터이기도 하다. 눈으로 구경만 해도 즐겁다. 4, 9일은 하양장날이다. 조산천을 중심으로 알록달록한 천막이 펼쳐지고, 다리 위에도 장사 차량이 서 있다. 오늘은 옷장사와 과자장사가 선점했다. 일명 센빼이 과자라 부르던 부채모양의 과자는 지금 보아도 침샘을 자극한다. 연유와 김을 발라 장식한 과자는 변함없이 전통을 이어가나 보다. 내가 기웃거리자 잽싸게 주인이 달려온다.
 

 

하양장날에 서는 노전 풍경




남쪽 방천 둑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오래된 가게가 즐비하다. 산뜻한 새 건물이 아니지만, 오래된 가게에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방천 둑 입구는 시골 할머니들이 노점을 펼치는 자리다. 찐쌀, 찹쌀, 삭힌 고추, 고춧가루, 배추, 삭힌 콩잎, 시래기, 무말랭이, 냉이 등을 비닐봉지나 작은 소쿠리에 담아 펼쳐 놓았다. 저절로 발걸음이 멈춘다. 냉이 한 소쿠리 이천 원, 삶은 시래기 삼천 원, 상추 이천 원어치, 다듬은 도라지를 오천 원에 산다. 장바구니가 그득하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신령에서 왔단다. 할머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전이 잔돈으로 나온다. 집에서 먹으려고 장만한 것인데, 남아서 시장에 가지고 나왔단다. 본래 시장의 기원이 잉여 농산물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할머니들의 난전 상품에는 자본주의의 상술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있다. 마치 친척 할머니께 농사지은 것을 얻어오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조산천 방둑에 서는 노전

 


조산천 남쪽 방천둑으로 장꾼들 천막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들 나름 질서와 규칙이 있는 듯싶다. 세상에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다 모아놓은 듯하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른 팔보다 큰 잉어와 양식 미꾸라지가 물에서 유영한다. 민물고기는 하양장의 특화상품인데,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이라 좀 아쉽다. 간식거리 파는 곳이 가장 붐빈다. 꽈배기와 어묵, 떡볶이, 호떡까지 간식천국이다. 각종 야채와 과일, 겨울별미 꼬막과 피조개까지 시장의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손님을 기다린다.

 

몇 년 전만 해도 조산천 북쪽 하천변에 강아지나 조류를 거래하는 장사도 있었다. 돋보기와 좀약, 고무줄, 파리채, 모기약, 토정비결 책 같은 책을 파는 노점상도 장날이라야 만난다. 동해에서 온 홍게와 갈치, 간고등어, 말린 가자미, 젓갈 등 어물과 와촌이나 청통에서 생산한 산나물과 농산물 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장이었다. 시장에 가면 뭐든지 싸다. 천 원 단위의 가격이 대부분이라 서민의 장바구니를 풍성하게 채워준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기지개를 펴면 시장에도 봄이 온다. 밭작물 모종을 팔고 꽃과 나무시장도 선다. 어쩌면 인생살이의 순환주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곳이 시장인지도 모른다.


 


 

 

옛 시장의 흔적을 찾아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간다. 젓갈가게 부부가 손님을 기다린다. 하양장에서 30년 가게를 했단다. 코로나로 손님이 없어 걱정이란다. 북적여야할 방앗간에도 손님은 없고 주인 혼자 손님을 기다린다. 사람 둘이 겨우 지나가는 골목에 간판도 없는 칼국수집이 보인다. 긴 나무 의자에 손님이 앉으면 즉석에서 칼국수를 끓여주는데 찹쌀새알도 판다. 장꾼들이 주 손님이다. 낡은 대문 안 마당에서 노부부가 연탄 화로에 찌개를 끓이는 중이다. 들어가서 말을 걸어본다. 40여 년 하양장에서 채소와 콩나물 같은 식재료를 팔았다. 지금은 시간을 보내려고 시장에 나온단다. 장날이 되어도 방천둑 노점상으로 손님이 몰려가고 옛날 점포에는 손님이 들지 않는단다. 낡은 풍경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시장 골목에서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2.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양장
 

 





예닐곱 살 아이의 눈에 비친 하양장은 별천지였다. 명절이 가까워오면 엄마를 따라 하양장에 갔다. 진량에서 71번 버스를 타고 시장 입구에 내려 제일목욕탕부터 갔다. 물보다 사람이 더 많은 목욕탕에서 피부가 벗겨지도록 때를 밀고 나오면 허기가 졌다. 따끈한풀빵과 호빵을 입안이 데이는 줄도 모르고 밀어 넣었다. 그 맛을 어찌 잊으랴. 어물전에서 풍기던 생선 비린내와 소금기 배인 짠내, 손님을 부르는 장꾼들의 목소리에 신명이 넘쳐났다. 흥정하는 소리, 구름처럼 몰려가던 장꾼들의 행렬, 소음 속으로 치솟던 뻥튀기 소리와 고소한 냄새 등은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다. 하양장은 내가 생애 최초로 경험한 박람회장이었다.


 


 


하양장은 역사가 깊다. 경산시지를 보니 1930년대 초부터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1965년에 공설시장으로 개설되었다. 현재 200여 개의 점포가 있다. 전통시장이 유통의 중심에 있을 때는 인근 진량 와촌은 물론 청통 금호 반야월 영천에서까지 물산과 사람이 모여들었다. 금호강을 끼고 있었으니 배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좋았고, 기찻길도 있어 유통이 용이한 조건이었다. 하양장은 어물전과 우시장, 청과시장이 유명하다. 하양 돔배기는 경상도 제사상에 필수품목이었고, 객지로 나간 자손들도 돔배기를 사러 하양장에 왔다. 지금도 어물전에 가면 돔배기가 있다. 돔배기 양지 한 꼬지에 만이천 원 내외이니 쇠고기만큼 비싼 고기다. 어린 시절 명절 때 돔배기 한 토막이면 밥 한 그릇 먹을 정도로 맛있고 귀한 고기였다. 지금도 가끔 짭쪼름한 돔배기가 먹고 싶다.

 

하양 우시장은 규모가 컸다. 소가 농가의 재산목록 1호이던 시절, 장날마다 우시장이 열렸다. 소 한 마리 팔면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도 은성한 시절이었다. 이른 새벽 미명 속에 허연 입김을 내뿜는 소의 울음소리가 우시장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흥정을 붙이는 소장수의 목청이 우시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거래는 얼추 성사된다. 모처럼 큰돈을 손에 쥔 농부는 근처 국밥집에서 빈속을 채운다. 뜨뜻한 국밥에 막걸리 두어 잔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으리라. 지금 주차장 뒤편에 국밥집이 서너 개 있었다. 문제는 소판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다. 소판 돈을 과음으로 잃어버리거나 노름판에 빠져 빈털터리로 귀가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양장의 유명한 소머리국밥이 우시장과 함께 사라진 것은 아쉽다.
 

 





옛 우시장 맞은편에 오래된 노포 중남식당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이 주방, 왼쪽이 손님방이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에 큰 글씨의 달력이 걸려있는데, 이집에 드나드는 손님이 나이가 많다는 증거이다. 품목도 단출하다. 술안주 두어 가지와 정식이 전부다. 큰 쟁반에 담겨 나오는 반찬만 24가지다. 비유컨대 경상도식 백반 정식이다. 밥과 시래기국에 꽃게탕, 나물 서너 가지, 부침개 서너 가지, 마른반찬 서너 가지, 생선조림과 갈치구이도 나온다. 돔배기와 돔배기 껍질로 만든 묵도 나온다. 경상도 지역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어린 시절 먹던 추억의 반찬들이다. 한 가지씩 맛보다 보면 밥 한 그릇 다 비운다. 빈 그릇을 내가는 것도 손님의 몫이다.
 

 





지금 하양장에 하양능금은 없다. 청송사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수입과일과 하우스에서 키운 온갖 과일이 진열되어 있다. 한입 베어 물면 새콤달콤한 과즙이 흘러내리던 홍옥이나 국광 같은 품종은 없다. 하양은 금호강을 끼고 비옥한 토지에 과수원이 많은 고장이었다. 하양초등학교 주변도 예전에는 과수원 지대였다. 하양 출신의 수필가 구활은 사과에서 그 시절의 하양을 이렇게 회상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멱을 감기 위해 금호강으로 갈 때는 으레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는 능금밭 사잇길을 택한다. 능금밭 주인이 아무리 막아도 열리기만 하는 개구멍을 있기 마련이고 그곳은 우리의 통로가 된다.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 따온 능금은 런닝셔츠 속에 넣어져 무성영화 시대의 희극배우 챠리 채플린의 배불뚝이 차림새가 되곤 했다.” 아날로그 세대는 지금도 경산하면 사과를 떠올린다. 그만큼 경산하면 사과, 그 중에서도 하양능금이 맛있고 유명했다. 하양능금과 청과상회 이야기도 이젠 전설이 되어 버렸다.

 

 

3. 하양 꿈바우시장으로 재탄생


 


 

 

지금 하양시장은 전통시장과 상설시장이 혼재된 형태이다. 4, 9일에는 예전처럼 장이 서고. 새로 지은 상설 꿈바우시장도 있다.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전통시장 현대화 정부지원 사업으로 문화관광형시장이 개설되었다. 문화관광형 시장이란 경산 및 하양의 역사와 문화, 특산품 등 전통시장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살려 문화와 쇼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관광 중심 시장이다. 즉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 체험거리가 있는 시장이다. 엣 시장터에 현대식 건물을 짓고, 시장 상인들이 입점했다. 2층에서 4층까지 주차장도 있고, 두 건물 사이를 잇는 통로가 있어서 오가기도 쉽다.
 

 

현대화된 히양공설시장(꿈바우 시장) 내부 모습

 



꿈바우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장날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일층에는 정육, 수산, 건어물, 반찬가게, 분식가게 등이 눈에 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옷가게와 한복가게, 화장품, 신발 가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상인회 사무실 앞에 관광안내 책자와 꿈바우시장 소식지, 문화체험 안내문 등이 놓여있다. 시장 속 갤러리, 상인과 고객이 함께하는 문화체험교실, 야시장과 음악회도 열린다.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청년창업도 지원한다. 가격 표시제와 카드결제, 청결관리, 친절 서비스 등 전통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한 바퀴 돌면서 상인들과 인사도 나누고 이야기도 들었다. 겨울 외투도 하나 구입했다. 다들 코로나로 손님이 너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2층 입구 휴게실이었다. 책꽂이에 책도 보이고, 검색 가능한 컴퓨터도 두 대 있었다. 어르신 대여섯 분이 마스크를 끼고 앉아 쉬고 있었다. 모두 하양시장 삼사십 년 단골고객이란다. 예전보다는 장꾼은 적지만, 장날이면 시장에 와서 장도 보고 친구들과 휴게실에서 이야기도 나눈단다. 꿈바우시장이 들어서고 시장 오기가 더 좋아졌다는 의견이었다. 시장 상인회에서 최근 의미 있는 문화사업 하나를 추진하고 있다. 하양 출신의 최초 여성영화 감독인 박남옥 감독 추모와 문화창달 및 업적평가 사업이다. 하양에 박남옥거리가 조성되고, 영화인들의 발길을 끌 수만 있다면,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거리처럼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도 있겠다.
 

 

하양시장에는 시골 장터의 정겨움과 추억이 남아 있다.

 
 


시장이 주는 푸근함과 흥정하면서 느끼는 교감, 엄마의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먹거리와 풍경들. 이런 것들이 그리워서 사람들은 시골 장터를 찾아간다. 하양장은 과거와 현재 사이 경계지점에 머물고 있다. 청송 진보장하면 김주영의 객주를 떠올리듯이, 하양 출신 문인이 하양장을 소재로 쓴 작품이 있다. 도광의 시인은 금호강 사과밭을 떠나지 못했다// 햇살 감기는 고샅길이 있기에/ 국밥 말아 먹는 하양 장날이 있기에(고향 친구 구활에서)”라고 노래했다. 조산천변에 하양 출신 도광의 시인과 구활 수필가의 문학비라도 세운다면 하양장이 문화시장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하양장이 지닌 역사와 전통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전통시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세대에게 하양장은 과거로의 추억여행을 떠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 이운경(이경희)>
< 사진/무철 양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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