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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행복한 시’

종심從心의 나이

기사입력 2015-07-04 오전 8:48: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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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행복한 시

 

종심從心의 나이 허형만(1945~ )

 

 

참 멀리 왔다고

나 이제 말하지 않으리

나보다 더 멀리서 온 현자賢者도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겠다고

나 이제 말하지 않으리

어떤 이는 말을 타고 가고

어떤 이는 낙타를 타고 가나

그 어느 것도 내 길이 아니라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던 것을

이제 와 새삼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느니

왔던 길 지워져 보이지 않고

가야할 길 가뭇하여 아슴하나

내 나이 일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이여

나 이제 말할 수 있으리

그동안 지나왔던 수많은 길섶

해와 달, 낡은 발끝에 치일 때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노라고

 

 

허형만 시인의 시집 가벼운 빗방울시집을 받고 그 서문격인 종심의 나이를 소개한다.

 

▲ 허형만 시인
시인은 자서에서 종심의 나이에 열다섯 번째 시집을 내며 무릎을 꿇고 모든 생명 앞에 더욱 겸손하겠다고 한다
.

 

인생 100세 시대(百歲時代)를 살고 있는 요즘 고희(古稀)는 아직 청춘에 불과한대도 시인은 벌써 나이를 세어가며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미래의 삶을 예견하고 있다.

 

일본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는 98세에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종심은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일흔 살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에서 차용한 것 같다. 시인은 고희를 넘어서 갖게 된 부끄러운 성찰과 고백을 더욱 절실하게 노래하며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시인은 1973<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시력 40년 동안 15권의 시집을 상재할 정도로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연구 활동을 해 왔다.

 

또한 시인은 고향 순천 시립도서관에 책 13천여권을 기증하며 "독서의식을 높이고 문화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동기 한서고 국어교사]

 

 

<시작노트>

 

종심(從心)이란 공자가 70세에 이르러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내 나이도 어느덧 마음을 좇는다는 이 종심에 이르렀으니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동시에 앞으로의 삶의 길도 내다봐야 할 나이임을 실감하면서 쓴 시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내가 지나왔던 길, 보이지 않음은 어인 일인가. 그것은 회한의 세월이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역경의 시간들이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한데 나 스스로 더 놀라운 것은 앞으로 가야할 길 조차 가뭇하여 아슴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는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더욱 겸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할 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내가 나임을 잊고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함을 나는 잘 안다.

  

 

▲ 허형만 시인

 

 

 

허형만 약력

 

1973월간문학등단. 시집가벼운 빗방울』『불타는 얼음』『그늘이라는 말15권과 활판시선집그늘, 중국어시집許炯萬詩賞析, 일본어시집. 평론집영랑 김윤식연구』『시와 역사인식등 다수. 영국 IBC 인명사전 등재. 한국예술상, 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역임. 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교육대학원장 역임. 현재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

 

 

 

강서뉴스 김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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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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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죽 강남국
    2015-07-27 오후 10:03:30
    이렇게 올려주시니 정말 좋군요.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언제 읽어도 좋은 시들이지요.
  • 앓이~
    2015-07-06 오전 9:49:53
    아침에 읽는 시 한편이 마음에 평온을 선물하는군요. ^^
  • 세모네모비
    2015-07-05 오후 8:39:12
    공자도 감탄할 것 같습니다
  • 달팽이랑
    2015-07-05 오후 6:09:13
    ^^ ★★★★★
  • 염정금
    2015-07-05 오후 4:42:16
    말간 햇살처럼 따사로운 시로 세상을 정화한 시인 이제는 종심에 이르러 온 길을 더듬어 가야할 길에서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인을 보며 내 안의 오만과 허세를 재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오래오래 허형만 시인의 빛 같은 시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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