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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 대교(적금 대교)는 사도진 대교 라 명함이 옳다

“전라 좌수영 팔영대교”

기사입력 2017-01-28 오후 11:48: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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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역사조명)
“전라 좌수영 팔영대교”



   1. 팔영 대교(적금 대교)는 사도진 대교 라 명함이 옳다

 

▲ 소설가 김용필.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을 지키던 5관 5포의 바닷길이 다리로 연결되는 개가를 올렸다.

 

이순신 제독이 여수 본영에서 직관인 고돌산진(고진)을 거처 방답진에서 해로를 살핀 후 여도진, 사도진, 발포진, 녹도진을 순찰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바로 전라좌수영을 한길로 연결되는 첫번째 다리가 개통 되었다. 원래는 적금대교로 건설하여 팔영대교란 명칭으로 개통 되었다. 때문에 여수시와 고흥군이 다리명칭을 놓고 첨예한 다툼을 벌렸다.

 

여수시가 구상해서 만든 적금대교인데 아무 연고도 없는 팔영산을 대교 명으로 썼다고 반론을 폈다. 따라서 고흥군은 관광 차원에서 팔영산이란 명산을 대교로 명명하는 것이 관광 차원에서 여행객의 흥미를 당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리 명칭을 놓고 역사적인 고찰이 부족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곳이 전라좌수영의 사도진 관활 해역이란 역사적인 의미를 부가하지 못했다. 따라서 팔영대교는 사도진 대교 라고 고쳐 명명하는 것이 두지역의 이해를 상쇄할 수 있다.

 

아무튼 임진왜란의 질곡의 역사를 되새기는 여수와 고흥을 가로 지르는 팔영대교(적금대교)가 개통 되었다. 여수시 화양면 적금도 화포에서 고흥군 영남면 별가에 이르는 1.34km의 현수교가 2016.12.27일 개통 되어 여수에서 110km 두 시간 소요거리가 20분 안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여수시 화양면에서 고흥까진 뱃길로 6km, 좁은 해역에 4개의 섬(적금도. 낭도. 조발도. 둔병도)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어서 짧은 거리인데도 엄청난 거리인 것처럼 여겨졌다.

 

앞으로 2019년까지 공사 중인 낭도대교, 둔병대교. 조발대교, 화양대교 등 4개 대교가 완성 되면 여수반도와 섬을 따라 고흥반도를 가로 지르는 다리 연결되어 자동차로 달릴 수 있게 된다. 이땐 여자만과 순천만이 다리 안에 갇혀 호수 같은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관관명소가 될 것이다.

 

   2. 전라좌수영 수군의 행적을 따라 사도진에서 방답진 까지

 

팔영 대교를 지나면서 잊혀진 역사의 진혼곡을 떠올렸다. 이 해로는 임진왜란 때 수군 행적도이며 이 해로를 따라 여수 섬들의 아름다운 관광 벨트 가 형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의 주력 수군이 사도진의 둔병도에 있었다. 사도진은 현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에 있었다. 가막만과 여자만, 순천만을 지켰던 수군 군영지였다.

 

왜군은 순천 곡창지대를 지나 전라도를 장악하려고 수없이 시도 했지만 사도진 수군의 철통같은 방어에 막혀 수역을 뚫지 못했다. 바로 사도첨사 김완과 장세득 수군장의 전술 때문이었다.

 

전라좌수영엔 6관 5포가 있었다. 순천부, 광양현, 낙안군, 보성군, 흥양군. 장흥부의 6관에 방답진(돌산), 사도진(고흥), 녹도진(고흥 녹동), 여도진(고흥 점안) 발포진(고흥 나라도) 5포와 고진(고돌산진-여수 용주리)이란 수군 훈련장과 내례포 좌수영 본영(여수시)이 있었다.

 

이순신 제독은(현계급 소장)은 여자만과 순천만을 지키던 5명의 종3품인 5포 진장(준장)을 거느리고 철통같이 좌수영을 지켰다. 고돌산진(고진)은 수군 훈련장이며 사도진 둔병도는 수군 주둔지 였다.

 

사도진 장이 둔병도의 수군을 통솔 하였다. 그리고 사도진 장은 낭도의 상산에 척후병 관측소를 두고 가막만, 여자만, 고흥만에 출현하는 적을 관측 했었다. 그러니까 낭도의 상산은 5포의 정보를 수집하는 연락초소였다.

 

▲ 낭도 상산 가는길(소설가 김용필)/ 상산봉 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석성 존재.

 

여수시에선 조선 수군이 진주한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의 역사적 가치를 깊이 새겨 화양에서 고흥으로 5개 다리를 구상 하였다. 그렇게 놓은 첫 다리가 팔영대교인데 팔영산에서 명칭을 빌려 왔다. 이에 여수 시민이 반발을 하였다.

 

그러나 적금대교건 팔영대교건 이곳이 좌수영이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의미와 개념이 부족한 것이다. 마땅히 이 다리는 사도진 대교 라고 부름이 역사적인 사실에 가장 접근하는 명칭이다. 여수 좌수영 본영에서 관활한 권역이지만 다리 위치는 고흥군에 가깝게 접근 하였고 사도첨사가 직접 관활한 구역이었다.

 

사도 첨사 김완은 둔병도엔 수군영을 설치하고 2,000여명의 수군을 훈련시켜 정예 수병을 양성하여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후임으로 온 장흥부사 였던 황세득이 사도 첨사로 부임하여 거북선 운행 노꾼을 둔병도에서 훈련시켜 정유재란때 장도 해전과 노량 해전에서 수훈을 세우고 장렬한 전사를 했던 것이다. 사도 진 수군들이 거북선을 운항할 때 주 역할을 했던 것이다.(고흥출신 신여량장군이 거북선 1호선장으로 전해 짐) 

 

사도진의 낭도는 전라좌수영 첩보대가 있던 곳이다. 황세득 장군은 낭도의 상산에 올라 적을 감시하였다.

 

사도진의 사령관 김완과 황세득 장수의 수훈은 낭도와 둔병도에서 잘 훈련된 수군이 세웠던 것이다.

 

   3. 해도 경관에 맞는 관광 인프라를 구출하다

 

바다인가, 호수인가, 파고가 없는 잔잔한 바다 가막만과 여자만, 순천만을 한눈에볼수 있는 팔영대교는 해양 관광의 보고이다. 앞으로 2019년까지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을 잇은 다리가 다 놓이면 이곳 전라좌수영은 해상벨트로 관광의 명물이 될 것이다.

 

고려 땐 왜구가 조선 땐 임진왜란으로 수많은 해도인과 수군들이 죽어 피바다를 이루었던 비극의 바다가 이제는 희망찬 관광의 명소로 거듭나서 선열의 수훈을 되새기게 되었다.

 

임진왜란의 종결과 전승은 이순신 장군과 5포진 첨사들이 이룬 공이었다. 그들이 거북선을 움직였고 그들이 전쟁의 화신이 되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명장들이었다.

 

좌수영장 이순신 제독, 방답첨사 이순신(동명2인), 사도진첨사 김완, 발포진첨사 정운, 여도진첨사 김인영, 순천부사 권준, 광양현감 어영담, 낙안군수 신호, 흥양군수 배홍립, 보성군수 김득광 휘하 수군장들이 죽어 이룬 공이었다.

 

특히 여도진 첨사 김인영과 사도진첨사 김완은 이곳 둔병도에서 수군을 훈련시켜 여자만으로 들어오는 왜군을 막았다. 이런 역사적 유적이 산재한 해역이 관광지로 우뚝 섰다.

 

남해안 해안 벨트를 따라 이루어지는 관광명소 답게 볼거리 인프라를 구축함이 시급하다. 순천만 생태정원과 여자도 갯벌체험과 이곳 갯벌에서 나오는 고막 등 고급 해산물을 응용한 식도락 문화와 웰빙 해양산업 전반에 걸친 자원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 팔영대교(적금대교)

   지난해 12월 27일 개통된 여수시 적금도와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연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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