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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 소설가/시드니 기행

“하버 브릿지에서 대영제국의 영광을 본다”

기사입력 2017-04-03 오전 7:58: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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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 소설가/시드니 기행)
“하버 브릿지에서 대영제국의 영광을 본다”



   1. 대영제국의 상징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공항에서 내린 호주의 첫인상은 오래된 건물과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인간과 친화적인 자연을 느끼게 하였다.

 

어딜 가나 호주는 19세기 대영제국의 영광을 누렸던 기회의 땅을 의식하는 흔적들이 추억의 영화로 생생하게 엮어져 있었다.

 

미개척 기회의 땅이라는 호기심으로 새 삶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소망이 과연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시드니를 찾았다.

 

생각과는 다르게 호주인은 지극히 고전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것에 자연 친화적 순수를 느꼈다.

 

마치 영국의 정서를 그대로 전수한 것 같으면서 영국도 아닌 그렇다고 동양적이거나 미국적인 생동감도 아닌 순수 보수를 지양하는 나라 같다는 느낌을 준다.

 

시드니는 세계 최고의 미항으로 이스탄블과 흡사한 도시 구조를 갖고 있었다.

 

호주의 내륙은 거의 사막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동부만이 큰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시드니는 영국이 첫발을 디뎌 이룬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동부 해안에 자리 잡은 호주를 대표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하버 브릿지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면서 대영제국의 영광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웅장함과 섬세함이 생동감과 어우러진 건축 예술의 극치였다.

 

미래를 보는 영국인의 넓은 안목과 위대한 야망에 어우러진 거대한 꿈이 교각 위에 서려 있었다. 하버 브릿지는 대영 제국이 호주 대륙을 점령할 때 세웠던 조형물로 영제국의 상징물이었다.

 

그 당시의 사고로 상상이 안갈 정도로 이 거대한 다리를 건설한 것을 보고 영국인의 미래를 보는 안목과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엿 볼 수 있었다.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는 아름다운 항구와 건축 예술과 감미로운 음악이 합성한 미적 조화의 걸작품이었다.

 

   2. 시드니는 자연과 인간이 친화된 도시이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물빛 속에 드리워진 시드니는 인천 공항에서 10시간 30분 비행으로 맞을 수 있다. 적도까지가 중간지점인 멀고 먼 나라로 우리 국민들이 이민 가서 살고 싶어 하는 가장 선호하는 도시이다.

 

시드니는 아름다운 해변에 건물이나 건축의 배치가 예술적으로 구배된 도시이다. 바다와 더불어 공원은 이 도시만의 특징이다.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넓은 공원엔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하다.

 

도시는 건물보다 공원이 많고 모든 건물이 높은 나무 아래 있었다. 대부분 정원은 100년 이상의 수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리에 서면 오래된 건축물이 약간 우중충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오래 된 그 자체를 예술로 승화하는 호주인의 미적 정서가 보인다. 해변을 끼고 굽이굽이 늘어선 도시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화폭이다.

 

  0. 시드니 관광

 

 

시드니 관광은 오페라하우스. 하버 브리지. 미세스 맥콰이어. 해양 위략지. 시드니 항구 전경, 아쿠아리움을 둘러 시작된다.

 

하버 브릿지 파이런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 항의 전경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내는 장관이었다. 푸른 바다를 안고 웅장하게 세워진 오페라 하우스 앞에 서면 사방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하버 브릿지는 75년 전에 영국인 토목 기술자들이 원주민을 데리고 blood, sweat, fears로 건설한 다리인데 시드니의 상징물이며 사람과 자동차와 전철(기차)이 동시에 달릴 수 있는 다목적 교량이다.

 

오페라 하우스는 1957년 덴마크 건축가 요른우촌(jeorn utzon)이 설계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둔 것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강요로 세라믹 타일 106만개를 붙여 완성하였다. 1979년엔 세계적인 프리츠커 건축 상을 받았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이 있는 구 시가지를 걸으면 넓은 공원과 촘촘한 고옥의 풍치를 볼 수 있다. 시드니는 오래 된 건축물을 모두 문화재로 등록한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의 세라믹 지붕이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전봇대가 콘크리트가 아니고 유칼리스 나무를 통목으로 사용하였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의상이 너무나 수수하고 검소한데 지적 매력이 보인다. 유치원에서 중, 고등학생들까지 교복 입은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주립 로얄 보타니 미술관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일렬로 줄지어 고궁과 박물관을 견학하는 모습을 보고 새삼 놀랍다. 미국의 자유분망하고 무질서한 문명에 비해, 전통과 제도와 규범에 맹종하는 영국적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드니는 빈부차가 많은 도시다. 백호주의를 부르짖는 영국인과 이민자들의 거주지가 다르다, 아무튼 집단 촌락의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점점 이민자들이 이 나라의 질서와 문화를 바꾸어가고 있다.

 

  0. 시드니 갑문 캡팝 언덕과 로스헤드 언덕

 

시드니 관문인 캡팝 언덕의 틈새바위와 로스헤드의 100미터 절벽 언덕이 시드니를 양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언덕을 내리면 본다이 해변의 금모래 해수욕장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본다이 해변은 금모래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유명 해수욕장인데 다른 나라 해수욕장과 다른 특색은 지극히 보수적인 가족들의 휴양을 즐기는 곳이라는 것이다. 육체를 자랑하는 비키니 여인들을 볼수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유객들의 휴양지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올림픽 공원은 마치 서울의 올림픽 공원과 흡사하다. 알고 봤더니 한국의 건설 회사에서 설계 구상 완성 했다는 것이다.

 

잠시 휴식을 위하여 시드니 동물원에 들렸다. 호주엔 맹수가 없어서 토기, 캥거루, 양, 같은 초식동물들의 천국이다. 유카리스 나무를 타는 느림보 콰알라의 움직임이 앙증스럽다. 그리고 자연의 동물처럼 평화롭게 사는 원주민의 삶이 신선하다. 원주민들은 전통 악기 다저리두(diegeridoo)를 불면서 애증스런 통곡의 소리로 자신들의 슬픔을 말하고 있었다.

 

블루오션의 아름다운 동부해안에서 강한 남태평양의 바람을 맞는 재미도 쏠쏠하다. 뭐니 해도 울릉공 비치의 아름다운 동부 해안은 바다와 소리와 인간이 공존하는 참 의미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힐링의 명소다. 시드니 바다는 염도가 낮아 갯바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져비스베이(jervis bay)에서 모터제트 보트를 타고 하이람스 비치의 하얀 모래밭을 바라보면서 달리면 돌고래 유희장을 만난다. 보트가 속력을 낼 때 남태평양 파도가 보트를 덮치고 여행객은 어느새 빨간 바람막이 외투를 입고 물에 뛰노는 돌고래를 쫒아간다.

 

호주는 초원과 목장의 나라다. 전국토가 초지로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몇 만평의 넓은 농장과 목장을 가지고 있다. 쿨랑카타 농장에서 호주 농촌의 진면목을 본다. 이 농장은 200년 전에 형성한 농장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19세기엔이곳에서 생산 되는 곡물과 와인, 모피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단다.

 

트랙터에 탑승하여 농장을 돌아본다. 언덕과 들판, 강을 돌아 끝이 안 보인다. 농장을 멀리 둘러싼 물가엔 맹글로브 숲이 보드 월크를 따라 무성하게 뻗어 있었다. 농장 체험을 마치고 와인너리에서 오래된 와인을 음미한다. 이곳 베리타운은 200년 전의 넓은 목장과 와인 농장이 아직도 존치하고 있었다.

 

호주는 우리나라 56배란다. 블루마운틴에서 호주 대륙의 웅장함을 의식한다. 온산이 물과 빛과 초록이 합성하여 창조된 대자연의 미를 보여주는 블루마운틴은 산전체가 한반도만큼 큰 산자락이다. 만만한 평지를 따라 달리면 고도가 점차 솟구쳐 1000미터에 이룬다.

 

블루마운틴은 천상단애 절벽과 울창한 수림 사이로 곤돌라가 움직인다. 이곳엔 엄청난 노천 석탄 이 매장되어 있단다. 산악 열차는 250미터 수직 탄광로를 오가고 곤돌라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블루마운틴에서 호주가 나무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을 꿰뚫는 듯 곧장 뻗은 유카리스 나무숲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3. 호주의 지형과 역사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대표적인 영연방은 호주, 카나다, 뉴질랜드이다. 호주는 화산섬이 아니고 사암으로 된 대륙이다. 그래서 화산과 온천이 없다. 1788년 영국이 지배하여 국가 원수는 영국 국왕이고 총독이 대표하는 입헌군주 국가이며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1901년 6개의 영연방 자치구로 탄생하였다. 뉴사우스웨일스주· 빅토리아

주· 퀸즐랜드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태즈메이니아주. 수도는 캔버라. 공식적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왕이고 통치 체제는 연방의회와 연방정부, 6개 주정부가 구성되어 있다.

 

영국군의 호주 ‘안장군’을 아는가, 목동들로 구성된 기병대였다. 1차 대전 때 호주 원주민이 영국군 의용대로 파견되었다. 영국군과 연합군이 독일군과 터키군 합성 군단이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맞붙었다. 이 전쟁에서 영국군과 호주 의병대가 참패를 당했으나 안장군은 터키. 독일군을 섬멸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은 훈련되지 않은 원주민을 전쟁에 내보내 무참하게 죽게 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수가 무려 5만 명이란다. 그렇게 그들은 전쟁에서 죽은 슬픈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안장군(기병대)만은 승리를 이끌어 1차 대전의 승전보를 올렸던 것이다.

 

주요도시는 월리스(WA)-퍼스, 남부(SA)-애들리드, 북부(NT)-다윈,앨리스스프링, 퀸스랜드(QL)-케언즈,브리벤즈, NSW(뉴월리스)-시드니, 빅토리아(VC)-멜번, 타스마니아섬(TAS)-호바트가 대부분 동부,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서쪽은 고원 지대, 중부는 저지대분지로 사막이고 서부와 동부고지 사이에는 고도 150m 정도로 중앙저지가 해수면보다 12m 낮으며 이곳에 고인 물은 짠물 호수인 에어호로 배수된다. 지형은 평균고도가 300m(세계평균은 약 700m) 미만으로 매우 낮고 600m 이상의 고지는 전국토의 5% 정도이다.

 

내륙은 대부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메마른 불모지와 반사막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해안지대에 살고 있다.

 

호주는 1616년에 네덜란드인들이 발견한 대륙인데 1688년에 영국인들이 이 대륙을 점령하였다. 영국은 1770년 제임스 쿡 제독을 앞세워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제임스 쿡은 시드니를 점령하여 영국령임을 유럽인에게 소개하였다.

 

영국의 왕 조지 3세는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에게 명하여 11척의 배에 1,500명의 원정대를 보냈다. 이 원정대는 호주를 점령하고 뉴사우스웨일스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영유권을 선포 하였다. 1788년 여름, 아서 필립은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초대 식민지 총독이 되었다.

 

그 후 영국은 신대륙 개발을 위해 수많은 범죄자를 파견하였다. 이들은 원주민을 학사하였다. 1788년 영국인이 정착할 당시 원주민(Aborigines)의 수는 대략 100만 인데 무차별 학살로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1.5%가량 남았다.

 

이렇게 호주는 영국인과 아일랜드 인으로 구성되었다. 마침내 영국은 1859년까지 호주의 모든 주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1901년에는 식민지를 영연방으로 통합하는 법을 공표하였다.

 

   4.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의 학살사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은 문화와 문명에 적응 못했던 멸종위기를 맞은 슬픈 종족이다. 같은 영연방 식민지인 뉴질랜드의 마호이족은 이들 문명에 잘 적응하여 독단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애버리진들은 문명에 적응을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슬픈 인생을 ‘디저리두’ 란 악기로 한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7세기 호주를 발견할 땐 약 100만 명의 애버리진이 300여개의 부족 국가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25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영국은 1868년까지 약 16만 명의 죄수를 오스트레일리아로 파견하여 농토를 개발하였다. 이들은 영국에서 가장 하류 계층이며 잔학무지한 죄수 출신들이어서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 하였다.

 

뉴질란드 이민자들은 처음부터 원주민인 마호이족과 평화롭게 지냈는데 호주 이민자들은 원주민들을 학살 하여 적응을 못하게 만들었다. 1860년대에는 태스마니아 섬 원주민 전원을 학살 하였다. 1868년부터 1968년까지 100년 동안 원주민이 거의 다 학살 되었다.

 

결과적으로 100만 명의 원주민이 300년 후에 4만 명으로 감소되었고 다시 100년이 지난 후 2007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원주민 애버리진의 총수는 약 45만 명으로 밝혀졌다. 세계 대전 때 영국인들은 이들을 의용대로 끌어내어 참살시켰다.

 

호주의 영국인들은 자기만의 나라를 만들려고 백호주의를 부르짖는 인종 차별을 로 원주민의 수는 점차 감소되었다. 원주민은 주로 퀸즐랜드· 뉴사우스웨일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 살고 있다. 그러자 원주민이 그 급속도로 줄어들어 영국은 부랴부랴 원주민 보호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남아있는 원주민을 극진대우를 하자 무지한 원주민은 존재를 으쓱대며 일을 하지 않고 정부의 보조만 믿고 무능한 자태를 보이자 원주민 보호책을 철회해 버렸다. 그때서야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자구책을 세워 영연방에 적응해 갔던 것이다.

 

호주 정부는 매년 20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교민도 이민정책에 적극 참여하여 현재 16만 명이 호주에 살고 있다. 호주는 특별히 기술가 노동인구를 받아드리고 기술 인력 우대정책을 펴왔다.

 

호주가 백호주의 정책으로 백인 인구가 줄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 레바논· 중국 등지에서 망명자와 이주민을 부러들였다. 그리고 1973년 백호주의를 폐지하여 이민자들이 자유로워 들어아서 인구가 급증하게 늘었다. 1945년의 백인 인구는 1000만인데 이민 정책으로 현재 인구는 2,000만 명으로 증가 한 것이다.

 

   5. 워킹 홀리데이로 대륙을 개발하다

 

호주는 기회의 땅으로 불러지고 있다. 노동인구를 워킹 홀리데이로 보충하고 있는데 한국의 젊은이들도 16,000명 정도가 워킹 홀리데이에 참가하여 농촌과 도시에서 휴일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비자는 1년이지만 더 연장할 수 있고 노동을 하다가 영주권을 얻어 눌러 앉기도 한다. 호주의 큰 대륙을 경영하려면 인구 적어도 4억이 필요한데 2000만의 인구론 태부족이다.

 

호주에 캠시 마을은 성공한 한인이민자들이 사는 부자 마을이다. 이곳에 사는 한국들은 처음 이민 와서 많은 고생을 해지만 지금은 성공하여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

 

워킹 홀리데이는 그런 면에서 호주를 개발하는 원동력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현대판 노예 제도이다. 아무튼 호주는 부족한 노동 인력을 얻는 수단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사용주는 쉽게 인력을 싸게 얻을 수 있어서 좋고 고용자는 일자리 확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호주 노동자는 시간당 18달러의 임금을 받고 의무적으로 5시간 일하고 원하면 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시골 농장에선 거의 18시간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농장에서 집단으로 고용되어 중노동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온 여대생은 시골 농장에서 일하다가 그곳 원주민 청년과 결혼하여 대 농장주가 되었다. 청년의 아버지는 500만평이란 어마어마한 산과 농토를 가진 부호였다.

 

그녀는 그 땅을 농토와 목장으로 일구어 호주에서 알아주는 신흥 재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워킹 홀리데이로 왔다가 꿈을 이룬 청년들도 많다. 아무튼 한국에서 일자릴 구하지 못 하는 청년들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등을 이용하여 기회를 포착함도 바람직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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