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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강서문학상 본상 수상작

<수필> 알람은 멈춰도 시계는 간다

기사입력 2018-12-10 오전 10:14:0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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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강서문학상 본상 수상작

<수필> 알람은 멈춰도 시계는 간다

 

-류자-

 

 

시계.

 

 

결혼 후 머리맡에서, 날이면 날마다 한결같이 울려대던 알람을 끄던 날, 남편은 어렸을 적 깨복쟁이 친구와 단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근속.

 

삼십 년 동안 매일 아침 일곱시에 출근해, 저녁 일곱시면 어김없이 돌아오던 그의 일상이 변한 건 순전히 나이 때문이다.

 

아직 창창한 오십칠 세. 돌도 씹어 삼키고, 말 술도 들이킬만치 기운이 남아돌건만 뒷방으로 자진 출근해야 한다 생각하니 휑한 바람이 가슴으로 불어오기도 했으리라.

 

다행히 향긋한 봄 내음에 코끝을 벌렁이며 바람난 노총각처럼 봇짐을 싸 들고 한량한 길을 떠났으니 급한 외로움은 잠시 뒤로 미뤄둘 수 있었겠다.

 

 

정년.

 

달랑 A4용지 비워낸 박스 하나 밖에 안 되는 살림살이를 거둬, 가슴에 안고 들어서는 그의 마음은 많이도 허전했으리라. 기밀문서랄 것도 없는 아이들의 편지 몇 통이 십수 년 서랍 속에 갇혀 있다 발각되어 지난 세월의 여여함을 보여준다. 좋은 시절 다 가고, 이팔청춘을 오롯이 회사에 묻었다 여겼지만, 우리 가족은 회사가 있어 행복했고, 삶의 근원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가장의 규칙적인 출근이 가정을 온전히 지켜주었던 파수꾼이었음에 정년을 맞도록 보살펴준 회사에 새삼 감사하다.

 

그러나 내일부터 출근할 수 없다는 현실이 막상 닥치니 심정은 고요치가 않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줄을 알았으나 너무 빨리 온듯하여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하고, 벌써 이렇게 늙었나 기가 막혀 허공에 발을 딛는 것처럼 허탈하기도 하다. 알람이 멈췄다고 고장 난 시계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듯, 남자가 흘리지 말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는 회사 화장실의 슬로건처럼, 눈물만큼 슬픈 자존감과 오줌만큼 간절한 자신감이 설자리를 잃어간다.

 

잠시 앉아 쉬었다가 힘차게 울릴 내일을 준비하려, 자꾸만 속으로 파고드는 감정을 일으켜 세우고,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다시 걷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정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예고하는 시작이다.

 

 

남편.

 

그가 집을 비운 날 오전 7.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라, 알람이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정신을 깨운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전혀 없어진 몸은 하릴없이 뒹굴뒹굴하는 연습을 한다.

 

정년은 남편이 하고 여유는 아내가 얻었다.

 

후다닥 달려드는 휴식이 무서워 서둘러 세상구경을 떠난 남편이 돌아오면, 정신이 좀 나긋나긋해지도록 한숨 푹 늦잠을 재우고 아침도 거르며 게으름을 피우게 해야겠다.

 

(인생 이모작의 첫걸음은 그 뒤에 걸어도 늦지 않으리라)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 많이도 힘겹고 고단도 했으니 이제는 천천히 꽃도 보고, 달도 보고 일렁이는 구름도 쳐다보고 늙어가는 아내의 얼굴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게 하리라.

 

나이만 먹은 줄 알았던 그동안, 아이들이 자라고, 집 한 칸도 장만했으니 과히 부족하지만도 않았다 하겠다.

 

'행복했노라' '그대들과의 업무가 즐거웠노라' 퇴임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발길이 무거웠다는 남편은 허전한 마음을 기차에 싣고, 한반도 끝까지라도 달려갈 기세로 다가올 현실을 잠시 늦춰 놓았을 뿐이다.

 

건강히 임무를 마친 당신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아내는 플래카드처럼 마음에 새긴다.

 

 

띵동.

 

경쾌한 알림이 울린다.

 

"도시농부학교 수강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구청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꿈꾸던 귀촌의 첫걸음.

 

달력도 넘어가지 않은 알람을 끄던 날, 다시 시계를 본다.

 

그는 생각보다 급한 성격이었던가 보다.

 

알람은 멈춰도 시계는 간다.

 

 

 

▲ 2018 강서문학상 본상 수상자 류자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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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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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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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석
    2018-12-11 오후 9:27:57
    강서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처절한 글 진솔한 글 많이 써주세요
  • 서동석
    2018-12-11 오후 9:22:02
    강서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처절한 글 진솔한 글 빛나는 글 많이 써주세요
  • 서동석
    2018-12-11 오후 9:08:47
    강서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처절한 글 진솔한 글 많이 써주세요
  • 영민
    2018-12-11 오후 7:53:06
    청춘을 다 바쳤다해도 나이 들면 떠나야 하는 직장,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겪는 일이지요. 눈에 선한 광경, 공감이 큽니다
  • 김두한
    2018-12-10 오후 11:57:57
    열심히 달려온 60 가까운 인생길 수고하셌습니다. 감사합니다 & 축하합니다^^
  • 조윤순
    2018-12-10 오후 7:16:27
    남편의 퇴직을 맞이하기는 같았건만~ 글재주 없는 제마음을 그대로 적어주신 류작가님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수상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 조윤순
    2018-12-10 오후 7:16:18
    남편의 퇴직을 맞이하기는 같았건만~ 글재주 없는 제마음을 그대로 적어주신 류작가님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수상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 신은봉
    2018-12-10 오후 5:06:01
    이제 60도 중장년이고, 80세가 되어야 노인으로 인정 받는 세대에 퇴직을 해야하는 가장의 모습이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 정천
    2018-12-10 오전 11:20:36
    멋진인생 2모작. 시계의 초침은 분침을 키워 멈추지 안는 또 다른 삶의 시간속으로 그렇게 젊음은 꽃으로 피워갑니다
  • 조남선
    2018-12-10 오전 10:29:28
    류자 님의 강서문학상 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늘 아름다움 속에서 말 없는 정진을 기원합니다.
  • 안길해
    2018-12-10 오전 10:25:25
    수필, 詩에 남다른 소질이 있고 봉사활동을 많이하여 칭송을 많이 듣더니 수상까지하고 축하드입니다. 새해에도 건필하시고 가정에 웃음과 행복이 항상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 박경숙
    2018-12-10 오전 10:20:01
    축하드리고 존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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