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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사서가 추천하는 인생 책⑤

김보통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기사입력 2019-11-12 오후 5:44:5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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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사서가 추천하는 인생 책

김보통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잘 다니던(남 보기에 그랬겠지만) 대기업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모두 말렸다. 대기업 퇴사를 막으려는 아버지의 무서운 표정을 그전에는 본 적이 없어 아주 낯설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의 작가 김보통(예명) 씨가 입사한지 며칠 만에 대기업을 그만 두겠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할 수 없이 그는 4년을 더 다녔고, 아버지가 암 환자로 돌아가시고 나서, 2013년에 32세가 됐을 때에 비로소 사표를 냈다. 이 책을 보며 내가 대기업을 그만두었던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아버지는 확고부동하게 대기업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셨다. 대기업에 다니는 게 인생의 보호막 같은 울타리가 되어 주리라 굳게 믿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착각이셨다. 1980년대 기업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다. 어쩜 나 스스로 조차 그런 생각을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페미니즘이란 개념도 없었고, 학교 대신 직장에 다닌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프로정신도 별로 없었다. 고졸이든 대졸이든 여성 사원은 모두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고 해서 유니폼도 입고 다녔다. 하는 일도 고졸 여직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맨토로 여길만한 선배도 없다. 그렇다고 남자직원의 보조를 할 수도 없고, 부서 안에서의 위치도 애매해서 내 할 일을 찾기 어려웠다. 늘 물 위에 뜬 기름 같았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의 작가 김보통(예명)은 남자 사원이었지만, 여성 남성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비인간적인 문제로 괴로워했다. 고질적인 대기업의 언어폭력,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회의, 거의 날마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회식과 같은 납득할 수 없는 조직 문화에 질려버렸다고 한다. 마침내 그가 퇴사하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하자 주위사람들은 너나없이 불행해질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말이다.

 

저 울타리를 넘으면 늑대가 너를 물어갈 거야. 그러니까 답답하더라도 이 울타리를 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울타리 안에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때 되면 밥 주고, 밤이면 재워주고, 혹시라도 늑대가 나타날까 이렇게 밤낮으로 지켜주니까.” (33p)

 

대기업을 다니 것은 울타리 안에서 사는 양이라는 선배의 설득에도, 다른 부서로 옮겨 주겠다는 인사과 직원의 회유에도, 그는 결국 퇴사했다. 대기업을 다닌 지 4년 만에 우울증과 더불어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다니면서 단지 돈을 번다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의식 때문에 무작정 도망치는 심정으로 사표를 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 안 할 처지는 아녔기에 회사를 그만 둔 후에도 결국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머나먼 길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셈이었다. 이번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직까지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단지 돈만 버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끝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84p)

 

문득 그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생각을 해낸다. 갑자기 그게 왜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대학시절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고 그때 사서 자격증도 받았다. 하지만 도서관에 취직하자가 아니라 도서관을 만들자고 생각한 것은 도서관법 시행령 제3조에 작은 도서관의 기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 건물면적 33제곱미터 이상.

2. 장서 수 1,000권 이상

3. 상근 정사서 1

 

퇴직금으로 책을 무려 2,000권이나 구입하고 혹시나 1년의 운영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오랜만에 시청에 갔다. 하지만 그 역시 좌절! 지역사회단체 활동 경력이 없기 때문이다. 남은 퇴직금으로 무리하게 도서관을 만든다는 것은 겁나는 일이었다. 1년 동안의 지원 사업에 선정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마당에 도서관을 운영할 자신이 없어졌다. 이마저 포기했다. 빠른 포기는 오히려 장점이라며 자기 스스로 위로하면서.....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기분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작은 일을 하면 된다. (중략)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결론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그것이 결론이었다.” (175p)

 

그 후부터 브라우니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그만 뒀던 그림도 다시 그리기 시작했고, SNS 트위터에 평범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림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늘어가면서, 내 인생의 재미있는 기억들에 대해 짧은 글 오늘의 이야기를 하루에 한 편씩 올렸다. 그리고 여전히 보통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일로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침묵 속에서 브라우니를 굽고, 묵묵히 그림을 그렸다. 마치 브라우니를 섬기는 수도사와 같은 생활이었다. 덕분에 실패한 브라우니를 만드는 일은 드물어졌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브라우니 맛만 좋아져서 어디에 쓸 것인가 싶었지만, 언젠가 도서관을 만들게 된다면 그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 조각씩 주면 좋을 것 같았다” (217p)

 

SNS 트위터로 알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마음을 다해 그려준 게 어느덧 500장을 넘어가고, 오늘의 이야기는 60여 개를 쓴 어느 날이었다. 트위터 쪽지로 만화가 최규석 작가로부터 만화 한 번 그려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난 만화 인터넷 서비스업체 대표는 회사원 만화를 그려오라고 헸다. 하지만 도저히 회사원 시절의 아픈 경험을 승화시켜 그림으로 엮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전혀 상관없는 암환자에 관한 만화를 그려서 가져갔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6개월간 주 2회씩 연재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첫 만화 작품이 아만자였다. 20대 청년 암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으로 6개월만 하기로 했지만 실재로는 11개월 뒤에 완결했다. 다섯 권의 책으로 나왔고, 사인회도 하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되어 문체부장관상을 받았고, 부천만화대상 시민상도 받았다. 같은 해에 일본과 미국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다음해에 일본판 아만자를 출간했다. 대만판 출간도 결정됐다고 한다.

 

그런데 김보통은 그의 예명이지 본명이 아니다. 왜 하필 김보통이라고 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딱 한번 인. (조대연 글, 소복이 그림, 녹색평론, 2010.1)에 나오는 주인공 평범씨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예명으로 만화연재를 시작한 이후 줄 곳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TV인터뷰에서는 고독이탈을 쓰고 나왔고, 자신의 책 프로필에서조차 학력과 경력을 일체 쓰지 않고 아주 단순 명쾌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2019년 입사

2013년 퇴사

2013년 만화가 전업

2015년 수필가 겸업

2017년 아직 불행하지 않음

 

20182월부터 6개월간 EBS <윤덕원의 인생라디오>의 한 코너 이거 보통이 아니네의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는 기회가 있어서 6개월간 이 코너의 고민 상담자가 되기도 했다. 이 상담 경험을 라디오 작가와 함께 글과 그림으로 엮어 이거 보통 아니네(강선임 글 , 김보통 그림, 생각정거장, 20194)를 출판했다. 최근에는 디저트 탐험가로서 맛있는 디저트 그림과 글을 함께 출판했다. 전업 만화가이자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그저 한 마리 크릴새우가 해류를 따라 흘러가듯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고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새우로서 살아간다. 싫은 것을 피하며 가능한 즐겁게, 다른 새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운이 좋다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행복할 수 있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 (292p)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그에게 유언처럼 한 말은 행복하게 살아였다. 행복하기 위해 거창해질 필요는 없다. 지금 내 상태에 집중하고 자만하지 않는데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처럼 불행하지만 않다면 스스로 할 만한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딱 한 번 인생이면서, 딱 한 번 인생이기 때문에...

 

/ 김은희 (화원중학교 사서)

 

 

 

 

- 아만자, 글 그림 김보통, 예담, 201510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글 그림 김보통, 문학동네, 20178

-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글 그림 김보통, 한겨례출판사, 20181

살아, 눈부시게, 글 그림 김보통, 위즈덤하우스, 20188

이거 보통 아니네, 글 강선임, 그림 김보통, 생각정거장, 20191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글 그림 김보통, 한겨레출판사, 2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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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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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미숙
    2019-11-13 오후 3:58:29
    마음이 편안해지는글 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것 다시 도전해 봐야 겠어요
  • 최미숙
    2019-11-13 오후 3:57:22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 이네요 내가 하고 싶은것 다시 도전 해 봐야겠네요
  • 김여인
    2019-11-13 오후 2:39:19
    내가 하고싶은것 잘할수있는것을 찾는것이 행복인듯 사서님 좋은책소개 감사합니다♡
  • 이혜경
    2019-11-13 오후 2:25:17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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