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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를 아시나요?

백범 김구 “정읍 보천교에 많은 빚을 졌다”

기사입력 2020-09-12 오전 8:59: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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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를 아시나요?

백범 김구 정읍 보천교에 많은 빚을 졌다

 

 

정읍 보천교에 많은 빚을 졌다” 19461123일 김포 비행장에서 김구 선생이 귀국하며 한 말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은 귀국하자마자 다른 곳이 아닌 정읍을 찾아 임정(임시정부)은 정읍 보천교에 많은 빚을 졌다라고 말했다.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 있는 보천교는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 중요한 자금줄이었으며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곳으로 알려진 보천교 본소가 있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구 선생도 광복 후 제일 먼저 보천교의 성지인 정읍에 가서 신세를 졌다고 했다.

 

보천교는 독립운동사에서 다른 종교나 단체보다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당시 2천만 정도 되는 사람 중에 약 600만이 보천교를 믿었다고 한다. 보천교의 핵심사상은 동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차경석(車京石)이 창시한 증산교(甑山敎) 계열의 신종교로 알려져 있다.

 

▲ 본소 건물

 

 

1880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차경석은 동학혁명 당시 동학 접주(接主) 중의 한 명으로 관군(官軍)에 의해 처형당한 차지구(車致久)의 장남으로, 일찍부터 동학운동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순회관(巡廻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증산교를 창교한 강일순(姜一淳: 호는 甑山)을 만난 뒤로는 자신의 이종사촌 누이인 고판례(高判禮)를 강일순의 부인으로 추천할 정도로 착실한 제자가 되었다. 강일순의 사망에 따라 흩어졌던 그의 제자들이 1911년 고판례의 종교 체험을 계기로 재집결하여 선도교(仙道敎: 뒤에 太乙敎라 함)라는 신종교를 세울 때, 차경석은 중심적 구실을 하였다.

 

우주의 조화주 하나님, 상제님을 모시고, 다가올 후천개벽 지상 선경을 건설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암울했던 시기에 빛과 같았던 보천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했고 교세가 커지자, 보천교의 교주인 차경석은 정읍을 중심으로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우기 시작했고 경복궁에 비견할 정도로 웅장한 건물을 짓는데, 당시 일제는 교세가 커지는 보천교를 경계, 탄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는 '보천교 신법' 보천교인들을 검거하는 대대적인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를 견디지 못한 차경석은 세상을 떠나고, 일제는 교단 해산령을 내려 보천교 본부 건물을 해체시켜 버린다. 보천교의 교세가 커지면서 민족종교를 견제하고 탄압하기 위해 처음 나온 단어가 유사종교’‘사이비라는 단어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사종교, 사이비랑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1915년 일제의 총독부령 제83호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정책의 하나였으며, 광복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그 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태을교’, ‘훔치교라고도 불리는 보천교는 일명 차천자(車天子)라고 불리는 월곡 차경석이 증산도의 창시자인 강일순을 만나면서 세운 신흥종교이다. 1919년경에 임명된 간부가 557700명이고 신도 600만 명이라고 스스로 내세울 만큼 규모 있는 종교 조직이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했고 당시 독립운동에도 자금과 인력이 연결되었다고 한다.

 

 

 

당시 본당은 1925년부터 1929년까지 4년의 역사 끝에 2만 평 부지에 세워졌다. 건축물이 45, 부속건물이 10여 채로 성전(聖殿)이라 불렀다. 보천교 본당이지만 궁궐을 짓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정문은 보화문이라 했는데 광화문을 본떴다.

 

 

중앙에는 경복궁의 근정전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십일전을 지었는데 136평으로 근정전보다는 크며 지금까지의 목조 건축으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십일전은 경복궁의 근정전을 중건한 최원식이 건립을 지휘했다. 본당 규모는 들어가서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1시간 이상, 건설비는 총 150만 원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십일전을 짓는데 필요한 원목은 만주 훈춘현 및 백두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합계

증산교 계열

천도교

천주교

유교

불교

기독교

비고

소계

보천교

태을교

훔치교

237

147

83

9

55

32

2

15

18

23

 

조선일보 항일기사 색인(1920~1940)

 

 

독립운동사에 빠질 수 없는 보천교는 당시에 일제 경찰에 끌려가 고문 당 한 수가 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도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무역과 외교 등에서 마찰을 빗고 있다.

 

삼엄한 일제 치하에서도 항일 독립자금을 대고 이로 인한 온갖 핍박을 당한 보천교에 대해 역사적 재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1] :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역사를 공부하면 겪게 되는 의문, ‘보천교의 비밀:작성자 상생으로 하나 되어

[네이버 지식백과] : 보천교 [普天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제공] : 불교포커스

 

 

강서뉴스 안길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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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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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걸
    2020-09-12 오후 12:29:58
    내가 태어나고 어릴적 잠시 자랐던곳이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많이 전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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