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옥희 시인의 ‘사랑은 찰나였다’
“햇살을 보지 못한 길에 흘린 단편의 시간들”의 통증
[사랑은 찰나였다] 권옥희
하늘빛이 내린다
등 돌린 너의 어깨처럼 서늘하다
며칠째 먹먹한 하늘이 싫어서
나는 바다로 간다
서리가 내린다
내 가슴을 베어낸 너의 말처럼 싸늘하다
며칠째 먹먹한 마음을 달래려
나는 산으로 간다
천천히 속을 비우며
사랑도 지우고 추억도 지우고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먹지처럼
혼자가 되자고 바람을 조른다
바지랑대 몇 개로 지탱된 위태로운 나날들
그까짓 거 완전히 비워내자고
시간의 절벽을 헤매며 찢겨가던 가슴이
너덜너덜해진 뒤에야 낯선 제안처럼
네 모습이 들숨으로 들어온다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
권옥희 시인은 바다와 나무와 꽃이 시인의 옆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시인의 곁에서 보고, 피고, 자라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시는 “시인의 절박한 간절함에서 꽃을 피운다” 라고 했다. ‘사랑은 찰나였다’에서 시인은 한 생을 살면서 자신이 겪었던 사랑과 고통과 이별마저도 찰나로 승화시키며 큰 빛으로 쏟아낸 간절함! 이것이 바로 권 시인 자신이 아닐까?
권옥희 시인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 삶에서 2년여가 허공으로 사라져서 사진첩엔 추억도 없다. 임종도 못 지킨 채 요양원 병실에서 엄마 혼자 쓸쓸히 떠나보낸 아픔만 크게 남았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무기력했던가? 그래도 버텨내서 다행이다”라며 “머리 허연 억새가 꽃이 된 건 바람을 안고 살아서다. 가냘픈 몸으로도 당당하고 꼿꼿해질 수 있는 힘! 살아가는 동안 숱한 바람과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도 그 힘을 얻고 싶다”라고 말했다.
시산맥 발행인이기도 한 문정영 시인은 “권옥희 시인의 정서를 따라가면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 참 많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사유가 깊고 통찰력이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써온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번 시집은 충분히 독자에게 그 영양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시인의 세심하면서도 철학적인 배려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이렇게 평했다.
사랑은 찰나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나도 모르게 네가 서 있다
권 시인의 가슴에서 품어져 나온 찰나였지만,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입을 틀어막아도 찰나의 이동 흔적이 남는다. 어쩌면 “햇살을 보지 못한 길에 흘린 단편의 시간들”의 통증인지 모른다.
[권옥희 시인 프로필]
* 경북 안동 임동 출생
* 1992년 ‘시대문학(현:문학시대)’ 등단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문학의집-서울회원
* 2004년 강서문학 본상 수상
* 2017년 강서문학 대상 수상
* 시집 ‘마흔에 멎은 강’‘그리움의 저 편에서’‘사랑은 찰나였다’
* 공저 ‘별난 것에 대한 애착’‘장미차를 생각함’ 등 다수
* 강서문인협회 부회장, 독서논술지도자
* 2021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디딤돌창작지원금 수혜
강서뉴스 신낙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