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고] ’염창공원‘을 누가 훼손지라고 폄훼하는가?
'닥치고 공급' , 입 닫을 주민 없다.
8월 13일, 국토교통부는 '서울 유일 대규모 공급'이라는 이름으로 염창근린공원 부지(서울 강서구 염창동 산24-1 일원)에 1,000세대 규모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주민들은 '염창 주거환경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결성하고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비대위는 "이번 공급 계획은 염창동 마지막 녹지를 파괴하는 명백한 산림 훼손이자, 20년간 이어져 온 선거공약을 뒤엎는 졸속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염창산은 장기미집행 공원부지일 뿐… '훼손지‘로 볼 수 없어
염창산은 1977년 도시계획시설(근린공원)로 지정된 이래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공원 지정이 풀린 적 없는 엄연한 공원 용지다. 서쪽 방면으로는 울창한 숲이 조성돼 있어 주변 수십 개 어린이집 유아들과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염창동의 유일한 숲이다. 그러나 염창동 안쪽 자락은 폐업 후 방치된 골프장이 염창산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
이 땅의 수난은 1990년 강서구청이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민간공원 개발을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사업자는 골프연습장 등 수익사업만 벌이다 2006년 인허가 취소, 2009년 직권 폐업 조치에 이르렀다. 이후 원상복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폐건물과 골조는 그대로 방치됐고, 강서구청은 제재할 마땅한 법적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손을 놓았다. 심지어 현재 토지주는 과거 민간공원 개발 당시 깎아낸 터에서 대형 특수차량을 상대로 버젓이 주차장 영업까지 벌이고 있다.
비대위는 "강서구청이 오랜 세월 방치해 놓고 이제 와 '훼손지'라 부르며 아파트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며 "설령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자연녹지로 복원하는 것이 마땅하지, 공원 용지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염창산은 도시공원 일몰제의 사각지대
앞서 서울시는 도시공원 일몰제(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효력이 자동 소멸하는 제도)를 대비해 2002년부터 2020년까지 132곳, 총 2조 9천억 원을 들여 개인소유 장기미집행 공원부지를 대대적으로 매입했다. 그러나 염창산은 민간공원개발 조성 이력으로 서울시의 우선 매입·보상 대상에서 밀려났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공원 용지 지위를 유지한 채, 20년 가까이 방치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비대위는 "구청이 1990년 무리하게 민간공원 인가를 내주지만 않았어도, 염창산은 순수한 미집행 공원으로 남아 일몰제 시행 당시 서울시 재정으로 이미 매입·보존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의 행정 과오로 서울시 매입 기회를 날린 구청이, 이제 와서 매입 비용 부담을 이유로 공공주택에 자리를 내주는 것은 결자해지의 책무를 저버린 행태"라고 규탄했다.
실제 서울시는 일몰제 시행 이후로도 염창산 공원화 원칙을 고수하며 예산을 투입해 왔다. 염창근린공원 전체 면적 약 11만 1,769㎡(약 3만 3,800평)중 18필지(약 1만 6,274㎡)를 직접 보상·매입했고 토지 보상 관련 소송 판결금을 집행하면서까지 공원화 원칙을 고수해 왔다.
누구를 위한 1,000세대인가 — 토지주 특혜 논란
진교훈 구청장과 한정애 의원은 "염창근린공원을 매입하려면 토지보상금만 3천억 원이 든다"며, "약속을 어긴 사업자 때문에 훼손된 땅에 이런 거액을 보상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특혜"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니 공원 매입 대신 주택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비대위는 이 논리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 공원 매입 보상은 특혜라며 피하면서, 정작 주택개발로 전환하면 같은 토지주들에게 LH 공공자금을 통해 훨씬 더 큰 현금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대위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자체 추산한 결과, 해당 부지는 3천억 원보다 현저히 낮았다. 토지주가 강서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2023년 대법원은 토지 가격을 산정할 때 용도보다 현재 이용 상황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비대위는 "법적 근거도 모호한 3천억 원이라는 숫자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8·13 대책의 사업 예정 부지로 발표된 5만 1,000㎡(약 1.5만 평) 중 91.8%(4만 6,536㎡)가 사유지다. 국공유지는 국유지 0.1%, 서울시 5.3%, 강서구 2.8%를 합쳐 8.2%에 불과하다.
비대위는 "공원 규제로 묶여 있던 맹지에 LH 공공자금으로 막대한 현금 보상금을 안겨주는 건 토지주들에게 완벽한 출구전략이자 특혜"라며 "그동안 서울시가 단계적으로 숲을 매입하고 공원화 해온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염창근린공원 현장을 방문한 서울환경연합 최영 생태도시팀장은 "경사면을 따라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는데 산을 깎지 않고 주택 개발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관할 자치구 협조 없이는 지구 지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강서구청이 앞장서 이 절차에 협조하는 것 자체가, 행정 실패의 상징인 부지를 지우는 동시에 특정 토지주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비대위의 판단이다. 비대위는 "정작 수십 년간 염창공원을 염원해온 주민들과 염창산에 사는 생물들, 그리고 앞으로 이곳을 이용할 미래세대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없다"고도 덧붙였다.
신속공급이 졸속 헌납행정으로… 이미 임대주택 서울 1위 강서구
강서구는 LH 서울지역 임대주택 물량의 25.78%(2026년 6월 기준), SH 임대주택 물량의 9.83%(2025년 12월 기준)를 차지해 각각 서울 25개 자치구 중 1위다.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도 과도하게 쏠린 수치다.
강서구청은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마곡 통합신청사 건립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강서구보건소, 강서구의회, 서울신기술창업센터 등 염창 생활권의 핵심 공공시설 부지 매각을 잇달아 추진해 왔다. 2024년 12월 강서구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LH는 이렇게 팔려 나간 공공부지들을 사들여 임대주택 공급 부지로 채워왔다. 공공 인프라는 사라지고 임대주택만 늘어나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여기에 염창산 1,000세대까지 더해질 경우, 염창동의 주거 환경은 회복 불가능한 한계에 부딪힌다는 게 비대위의 우려다. 서울시의 '2030 서울생활권계획'에 따르면 염창 생활권의 1인당 공원 면적과 보건·복지 인프라는 이미 서울시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대규모 공원은 마곡이나 외곽 산지에 쏠려 있어, 고밀도 아파트 밀집지인 염창동 주민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녹지는 사실상 염창산이 유일하다.
비대위는 "신청사 건립을 위해 주민 건강을 책임지던 보건소까지 팔아넘기더니, 이제는 주민의 유일한 숨통인 염창산마저 주택실적으로 헌납하고 있다"며 "기초 인프라 확충은커녕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졸속 행정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나흘 전 카톡 통보"… 절차부터 어긋난 주민설명회
비대위가 염창 1만 서명운동을 본격화하자, 강서구청은 주민설명회 개최를 알려왔다. 9월 7일 오후 1시경 주민 1,000여 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원도심개발팀장이 직접 들어와 "11일 금요일 오후 7시 염경중학교에서 주민설명회를 열겠다"고 공지한 것이다. 공식 문서도, 사전 예고도 없었다. 원래 비대위는 9월 12일 강서구청 앞에서 염창공원 개발 저지 및 보건소 매각 반대 집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강서구청이 하루 앞서 기습적으로 주민설명회 일정을 발표하면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뒤늦게 공개된 설명회 자료 역시 졸속의 흔적이 역력했다는 게 비대위의 설명이다. 인접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 단지의 주민편의시설 배치도를 마치 이번 사업의 공공시설인 것처럼 끼워 넣은 게 대표적이다. 현실성 없는 도로 대책을 제시하는 등 급조된 정황도 다수 발견됐다.
설명회를 하루 앞둔 비대위는 "우리는 이것을 설명회라 부르지 않는다. 국토부가 내세우는 '신속공급'은 사실 주민을 배제한 '졸속추진'이며, 나흘 만에 통보하고 밀어붙이는 오늘의 방식이야말로 '닥치고 공급'식 행정 폭주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9월 11일(금) 오후 6시 염경중학교 3층에 사전 집결해, 오후 7시 시작되는 주민설명회 현장에서 항의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국토부와 강서구청이 주민들의 목소리를 과소평가했다면 명백한 오판"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주거 안전과 염창산의 도시숲을 지키기 위해 행정적·법적 대응을 끝까지 이어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